2008년 01월 05일
히라가 사이토의 진실
나, 히라가 사이토는 아키하바라의 거리에 서있었다. 우뚝하게 서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
던지, 주위 사람들은 어쩐지 수상하다는 눈길을 보내면서 내 주위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땅바닥에 떨어져있던 노트북을 주워들었다.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 무엇도 변하지 않
았다. 내가 떠나기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 히라가 사이토가 하르케기니아의
루이즈에게 소환되어서 허무의 사역마 ‘간달브’의 이름으로 싸워왔던 그 시간은 어떻게 된
건지 지금 이 지구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언젠가 들었던 타바사의 말이 생각난다. 서로 다른 세계간에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다를지
도 모른다고. 자신의 손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싸워왔던 투쟁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내가 꿈
을 꾸지 않았던 것은 분명했다.
나는 드디어 돌아온 것이다. 나의 고향, 일본으로.
그동안 수없이 많은 고뇌와 시련을 겪었지만 나는 드디어 지구로 돌아왔다. 수없이 많은 죽
음의 고비를 겪었고, 7만대군과 싸우면서 간달프의 룬을 잃기도 하였고, 그리고 수없는 영
광을 거쳐 나는 드디어 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눈물이 쏟아질 듯 했다, 땅에 입을 맞
추고 싶었다...
만, 나에게서 범접하기 힘든 진성●덕의 오라를 느꼈는지 점차 늘어나는 슬금슬금 피해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져서 나는 얼른 노트북을 집어든 채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집에 도착하니 그동안 너무나도 그리웠던 부모님이 계셨다. 물론 부모님은 너무나도 태연하
게 노트북 수리를 맡기러 갔다왔던 아들에게 노트북은 왜 안 맡기고 그냥 왔냐며 타박조로
인사를 하셨다.
뭔가 소설 같은데 나오기로는 이런 상황에선 그냥 무조건 부모님의 품에 안겨 엉엉 운다는
것 같았지만 은근히 그게 또 어색해서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는 내 방에 들어갔다.
너무나도 반가운 내 방. 나는 너무나도 엄청난 일을 겪었는데 내 주위 세계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니 너무 이상하다. 그래도 내가 없는사이 엄청난 일이 일어나서 난리가 난 것보
다는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음, 좋게 생각하자.
일단 내 원래세계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하르케기니아와는 나름 영구적인 커넥션이 생겨나서
이젠 그 왕래가 어느 정도 가능해질 것 같다는 게 마법 아카데미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사
실 그런 단서가 있었기에 루이즈가 나를 이곳으로 돌려보내는 걸 허락하기도 했고. 어쨌든
얼렁뚱땅한 해피엔딩이었다. 나는 그날 밤 오랜만에 내 침대에서 푸욱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어김없이 나는 학교에 등교하였다.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우리
학교는 남학교이다. 안타깝게도 여자 따윈 없다. 냄새나는 남자들과 3년을 같이 보내야하는
것이다. 조금 슬픈 일이다.
어쨌든 별로 로망도 없고, 두근두근거리는 사랑도 없는 그런 학교로 나는 무겁게 발을 옮기
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구가 그리웠건, 어쨌건간에 싫은건 싫은 것이었다.
... 뭐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는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눈이 떠진 나는 평소보다 훨
씬 더 일찍 등교를 시작했다. 차들이 가득한 도쿄 시내를 지나가는 것은 뭔가 너무나 오랜
만에 겪는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 나에게 있어서는 오랜만이었지만.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걷다보니 학교가 나왔다. 아직 비교적 이른 시간이어서 등교를 하는
학생들은 많이 없었다. 나는 은근히 감회를 품으며 교문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너무나도
지겨운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기뻤다.
그리고 여느때와 같은 일상의 모습이 보였다.
“좋은 아침, 에미야. 오늘도 학생회 잡무중이냐?”
“아아, 히라가. 뭐 그냥 조금 돕는거지.”
연장통을 들고 복도를 부리나케 뛰어가는 붉은 머리의 소년이 보였다. 에미야 시로, 학생회
의 모든 잡무와 각종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기로 유명한 모범청년. 당연히도 우리반에서
역시 당번을 도맡아서 하는 순둥이 녀석이다. 가끔은 친구로서 그 순진함이 불쌍하다고 느
껴질 정도이다. 뭐, 그래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상관없겠지.
어쨌든 그리웠던 풍경을 지나치며 나는 우리 반으로 들어섰다.
2-D반. 뭐 아무리 사정이 어찌하였든 나의 악우들이 모여 있는 곳.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
교적으로, 아니 잘은 모르겠지만 교외에서도 화제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반의 일원인 나로
서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른 반 친구 하나가 내게 2-D반에서 가장 평범한
녀석이라고 평을 해준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소리다. 그리고
내가 하르케기니아에 다녀온 지금,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야말로 가장 평범하지 않은 학생이
된게 아닐까 싶기도하다.
드르륵, 문을 열었다.
아직 시간이 일렀기 때문에 교실에 와있는 애들은 많이 없었다. 책가방 하나가 저쪽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아마도 에미야의 가방일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교실엔 두세
명 정도가 앉아있었다.
“여어.”
나로서는 무척이나 오래간만에 보는 것이기에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두 명이 고개를
돌아본다.
“어이, 웬일로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등교냐.”
“너야말로.”
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 나는 가볍게 그 빈정거림을 받아치
며 뒤를 돌아보았다.
“... 어이, 사이토. 뭐가 좋아서 그렇게 느끼한 표정으로 쳐다보는거냐.”
“걱정마. 너보고 그러는건 아니니까, 쿈.”
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름 우리 반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쿈이다. 그
본명 따위는 잊어버린지 오래다. 어쩐지 그 본명을 부르려고 할 때마다 내 뒤에 벼락이 떨
어졌던 것 같은 느낌이다. 본인은 그 별명을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너 그 키타고 여자애랑은 잘 되고 있냐?”
“.. 그저께 네가 본 광경을 반추해봐라. 너는 하루히한테 그런 짓을 당하는 것을 잘되는거라
고 표현할 수 있겠냐?”
아아, 지구에선 시간이 하나도 흘러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잊어버렸다. 하르게키
니아로 소환되기 몇 일 전 주말, 나는 쿈에게 웬 아마추어 야구대회의 일원으로 참가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물론 나는 애원이자 협박인 그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어쩐지
그토록 이상한 집단에는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스즈미야 하루히라고 했던가? 어쨌든 파멸형 소녀와의 짝이라. 좋은 만남이군.”
“... 죽여버릴테다.”
어쩐지 번민에 휩싸인 듯, 고개를 감싸안는 쿈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또 하나의 친구에게 시
선을 돌렸다.
“좋은 아침, 타카마치.”
여느때와 같이 타카마치 쿄우야는 과묵하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금 자기가 하던 일을 시작하
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예리한 실을 가는 듯 했다. 뭐에 쓰는걸까? 새삼 궁금해져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 어쩐지 매서웠다. 예전에는 당연히 몰랐지만, 수없는 전투를 치러온 지금의 나에게 있어
서 쿄우야의 자세는 범상치 않게 보였다. 그 예리한 실도 마찬가지였다. 저것도 일종의 무
기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평소에도 무사처럼 언제나 과묵하고 절도있는게 쿄우야의
일상이었다...
“뭔가 할말이라도, 히라가?”
“아니, 전혀... 아, 타카마치. 너네 카페 조만간 들러도 괜찮아?”
어쩐지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는 듯, 날카롭게 묻는 쿄우야에게 나는 얼른 이것저것 말을 둘
러댔다. 내 말을 듣자 쿄우야는 평소엔 보기 힘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쪼록, 환영하지.”
저런 외견과는 보기 다르게 쿄우야는 한 카페의 실질적인 마스터 역할을 하고 있는 부드러
운 녀석이다. 미도리야였던가, 그 카페 이름이. 어쨌든 끝내주는 케이크맛과 귀여운 웨이트
리스들로 유명한 집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루이즈라던지, 시에스타라던지, 지구로 올 수 있
게되면 꼭 한번 데려가야지. 아,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은 없지만 그 카페의 막내 웨
이트리스, 그러니까 쿄우야의 막내동생쯤 되어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의 눈에서 흉폭한 핏
빛 위압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는건 내 일생 최대의 비밀이다.
어쨌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별안간 엄청난 비명소리가 뒷자리에서 튀어나왔다. 나와 쿄우야, 그리고 쿈까지 모두 놀라
서 뒷자리를 쳐다보았다. 그 비명을 질렀던 것은 방금 전까지 책상에 엎드려 자고있던 이토
마코토였다. 모두들 얼른 달려가서 마코토를 부축해주었다.
“왜 그래, 이토. 괜찮아?”
“아, 아니... 아, 악몽을 꿨던 것 같아...”
평소의 잘생겼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마코토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어쨌든
조금 싱거운 기분이 들었던지, 쿈이 슬쩍 물어보았다.
“아니, 도대체 어떤 꿈이었길래 그토록 무섭게 비명을 지르냐? 우리가 다 놀라 까무러칠뻔
했잖아.”
“그게 말이지...”
어쩐지 마코토의 동공이 수축했다.
“... 잘은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도 어떤 보트 위였던 것 같아. 응, 확실해. 꽤 화려한 요트
였던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확실하진 않지만.. 어쩐지 석양이 지
고 있었던 것 같고...”
다시금 마코토의 동공이 수축하기 시작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군가가 나를 안고있었어... 응, 확실해. 난 안겨있었어. 그래서 난 가만히 내 몸을 내려봤
는데.. 내려봤는데.. 아무 것도 없었어. 그러니까, 팔도, 몸통도, 다리도... 그냥 내 목만, 내
얼굴만 누군가가, 누군가가 안고 있던거야, 그래 안고있던거야! 내 머린 잘려있고!”
어쩐지 패닉 상태에 빠지려는 듯한 마코토의 등을 탁탁 쳐주었다. 그제야 마코토는 조금 진
정하는 듯 했다.
“그래그래, 그런 소름끼치는 꿈은 잊고. 맞아, 그때 그 머리 길고, 그 뭐냐, 꽤나 스타일 좋
던 그 여자애랑은 잘되고 있냐?”
“아, 코토노하? 그냥 좀 뭣같아서 대충 놀다가 끝냈어.”
.... 어쩐지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이런 기분나쁜 소리를 하는 놈이 짜증나기 시작했다. 그
냥 아무런 말도 없이 우리 셋은 모두 몸을 돌려서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녀석은 갑
자기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무시한다. 그냥 아까 꾸던 그런 엽기적인 꿈이나 확
꿔버렸으면 좋겠다. 아, 웬지모르게 엄청난 일이 마코토 녀석에게 닥칠 것 같은 느낌이 들
지만, 뭐, 그냥 단순한 망상이겠지.
어쨌든 서서히 애들이 등교할 시간이었다. 하나둘씩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아침인사를 건넨
다. 어쩐지 이상한 모양이다. 하긴, 웬만해선 남자들 사이에서 좋은 아침, 과 같은 인사를
나누는 일은 드물지. 뭐 그래도 나는 반가운 것이다. 그리고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을 발견
했다.
“여어, 좋은 아침. 린, 가인.”
“으응, 안녕.”
“좋은 아침이다.”
역시 조금은 새삼스러웠는지, 둘은 얼떨떨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털썩 자
리에 앉는다.
“어쩐지 새삼스러운 짓을 하네, 너도.”
“아, 확실히 이게 특이한거지? 난 또, 일본은 뭔가 굉장히 친근하게 대하는 문화가 발달된
건가 싶어서.”
... 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어쩌다보니 몇 달째 주위에 같이 앉아 나름 친해졌다고 할 수 있는 두명의 남자다. 츠치미
린, 그리고 한국 유학생 유가인.
“아니, 뭐. 그냥 기분상이니까 이해해주지?”
조금 불량스러운 흉내를 내면서 허세를 부리자 둘은 손사레를 치며 그만하라 이른다. 뭐,
이정도면 됐다. 츠치미 린, 그리고 유가인. 뭐 별로 접점은 없는듯 하지만 이상하게도 꽤 친
한 사이다. 그리고 둘 다 썩 괜찮은 인물의 소유자고, 또 평범하다. 일단 이상하게 잘생긴
사람이 많은 우리 반이지만, 그 평범함으로써 나름 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름 생
활하는 것도 모범적이고.
“응, 뭐 모범적인 동거학생, 모범적인 유학생. 음, 너희들 정도면 괜찮다.”
이뭐병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둘에게 창문 밖을 가리킨다.
“저것보다는 말이지.”
밖에서 고성이 들린다. 어쩐지 요란한 소리도 함께 울린다. 그 소리는 저 멀리 복도로 이어
졌다. 그리고 그 엄청난 소리는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뭔가가 뛰어오는 소리는 곧 교
실 바로 앞까지 이어졌다.
쿠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교실문이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와 동시에 무척이나 빠르
게 사람으로 보이는 물체 하나가 우리가 앉아있던 책상 안으로 파고들었다. 뭐라고 제지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 밖에서는 선도부 선생님 하나가 나타났다.
“호시노!!!! 이 자식, 어이, 호시노 못 봤냐?”
모두는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사나운 표정으로 모두를 쑥 훑고 지나가더니 생활지도 선생
은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복도 저너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휴우, 덕분에 살았다.”
책상밑에서 기어나온 것은 우리 반의 악동중 하나인 호시노 와타루였다. 이 자식, 기숙사에
살면서도 뭔가 항상 사고를 치고 다니는데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는게 신기하다. 뭐 그래도
성격은 괜찮으니까 쫓겨나지 않는 편이 다행이기도 하다.
“여어, 실례했다.”
어쨌든 뭔가 엄청난 짓을 저질러놓고는 유유히 자기 자리에 가서 앉는 와타루를 가리키며
나는 멍하니 있던 린과 가인에게 이야기했다.
“걱정마, 저것보다는 더 모범적이라는 소리였다.”
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퍽 모범적인 소년들이다. 츠치미 린 쪽이 조금 더 호
쾌하다고 하면 유가인 쪽이 조금 더 섬세하다는 측면이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맞아, 그건 그렇고 지난 번에 교실에 나타났던 그 두 여자애는 어떻게 됐냐, 린? 조금 귀
가 길었던 것 같은데.. 맞지? 아, 거기다가 너는 요즘 왜 이렇게 자주 조퇴하냐, 유가인? 거
기다가 또 왜 몸 여기저기엔 멍이 들고...”
웬지 모르게 그동안 묻고 싶었던 질문들이 쏟아져나온다. 두명 다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긁적인다. 뭔가 중요한 문제인가? 그런데 어쩐지 피곤한 표정으로 린이 책가방을 뒤
진다.
“뭐, 그런 건 그렇다고 치고... 최근 나 오타쿠가 되가는 것 같아.”
“뭐시기?”
츠치미 린은 가방을 뒤지더니 뭔가를 꺼냈다. 그건 다름아닌 마징가 로봇이었다.
“신도 악마도..., 으음, 마징가, 카부토, 마징가...”
어쩐지 평소의 쿨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음침한 린이었다. 다가가기 힘든 그 포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도 그 포스가 옆에서도 나를 덮쳐오기 시작한다.
“으응, 확실히 츠치미도 나랑 비슷하네... 대신 나는 전대물이지만.”
가인의 책가방에서 끊임없이 피규어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모두 전대물 피규어들이었
다. 타이즈의, 타이즈의, 타이즈의. 가면라이더, 각종 렌쟈시리즈들, 벡터맨, 독수리 오형제...
신세계가 열리는 느낌이다, 이건.
“적당히 좀 하지, 둘다.”
내가 질렸다는 듯 한마디 하자 둘다 화들짝 놀라며 그 굿즈들을 도로 책가방 안으로 집어넣
는다. 둘다 머쓱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우.”
어쩐지 심각하게 다운이 되버린듯한 린과 가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시
계를 보니 어느새 조회가 시작할 때가 되어있었다. 슬슬 자리를 돌려 앉았다. 일단은 조회
시간이니, 담임이 들어왔다간 귀찮다.
그리고 기대가 되는 것도 있거든.
드르륵,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담임이 들어옴과 동시에 교실은 폭소로 뒤덮였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지만 이번은 조
금 강했다. 야, 이런 것이 약점을 노리는건가. 나는 웃음을 멈추기 위해서 꽤나 노력을 해야
만 했다.
“야 이 자식들아, 조용히 안할래!!!?”
아아, 그런 모습으로 혼내봤자 아무런 위압감도 없습니다,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어
담당교사이자 우리 반의 담임교사인 마에바라 케이이치 선생님은 네코미미에다 메이드복을
입은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계셨다.
일단은 좋은 선생님이다. 물론 그 핵심은 수업이다. 선생님의 말빨은 가히 엄청나다. 소문에
의하면 엄청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FBI의 비밀 네고시에이터로 활동한 적도 있다고 한
다. 코드명은 ‘Wizard of Language'였다나? 뭐 내가 알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학생들에게는
무척이나 인기가 좋다. 학생들의 모든 고민을 공유하고, 그리고 그런 고민을 들어줄때는 멋
진남자 K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
그리고 또 선생님의 특징이라면 가끔 가다 이런 식으로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코스프레를 하
고 나타나신다는 사실. 듣기로는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이런 코스프레를 시키시던 것은 선생
님의 고교시절 때부터라는 것 같기도하다. 사모님의 실세가 엄청나다나? 아,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우신 갈색머리의 여성께서 몇 번인가 국어시
간 때 선생님을 ‘들고’ 사라진적이 있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모두들 슬슬 사그러들자 선생님은 곧 조회를 시작하셨다.
“자, 뭐 오늘도 별일은 없다. 저쪽 위에서 꼰대들이 하는 소리는 있지만 적당히 무시하고.
아, 오늘 토오노는 결석이다. 평소처럼 빈혈이 심하다는 것 같다. 아마도 메이드씨들에게 둘
러싸여있겠지. 병문안 가볼 사람은 가보도록.”
어쩐지 무척이나 부럽고, 다른 반들 같으면 수컷들의 본성이 튀어나올 때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반의 반응은 조용하다. 이런 점이 신기하다면 신기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하리마, 학생자치부에서 너 수염밀었다고 칭찬하더라. 쩝, 뭐 나는 그 수염도 나쁘
지 않았다만. 남자의 본성은 수염으로부터 비롯되는건데 말야, 나름 순애라는건가, 네놈도.”
어쩐지 너무나도 말이 안되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내뱉으며 케이이치 선생님은 계속 조회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아이자와랑 코우노는 나 좀 잠깐 보자. 아, 맞다. 그리고 아야사키, 너
네 집에서 올 때 ‘츠치미 쿈이치의 우울’ DVD 좀 타치바나 대여점에서 빌려오라고 전화왔
더라. 잠깐만, 이거 DVD 이름이 왜 이따위야?”
어쨌든 평소처럼 두서없이 조회를 끝내고 마에바라 케이이치 선생님은 고양이 꼬리를 흔들
며 교실문을 나갔다. 뭔가 모두들 한단계 더 어른이 된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잠깐만, 다음 시간이... 영어?”
큰일났다. 책이 없는데, 이걸 어떡하지? 이미 딴 반에 빌리러가기도 늦은 듯 싶었다. 아무리
착한 영어 선생님이라지만... 음, 오히려 교과서를 안갖고 오는게 조금 더 미안한 듯 싶기도
하고...
“사이토, 나 책 두 권 있는데 한 권 빌려줄게.”
“고, 고마워. 카부라기.”
나는 약간 얼굴이 빨개진 채로 책을 받아들었다. 상당수 전교생들이 ‘BL이라도 좋아!!!’ 라
고 외치게끔 하는 우리의 부잣집 도련님, 카부라기 미즈호씨는 나에게 싱긋 미소를 날린 채
자신도 수업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수업종이 울리고 곧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여느 때 같이 키가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
는다. 특히 교탁 앞에 서니까 그렇다.
“자,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낭랑한 목소리, 현 연령 10세의 네기 스프링필드 선생님은 평소처
럼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뭐, 아무래도 저런 쇼X다 보니까 짖궂은 애들도 선생님을 건들
긴 뭐하다. 일단 남자긴 해도 귀엽고 어리니까. 물론 몇 번 건드린 전례는 있었지만 이상하
게도 그들의 그후 생사는 알려진 바가 없다. 웬 피가 빨린 시체 몇구가 발견되었다는 소식
은 들은 것도 같은데.... 일단 10세의 외국인이 일본 일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수상하기는 하지만 실력은 무척 좋으시기에 문제는 없다.
“자, 반장 인사하세요.”
네기 선생님이 밝은 목소리로 반장을 호명하자 반장은 평소처럼 그 화려한 동작으로 일어났
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교복이 아니라 항상 중국의 고대복식을 입고 있는 우리 반의 완
벽한 엄친아, 반장 양소유는 선생님을 향해 깍듯이 인사를 했다.
“차렷, 경례!”
곧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셨다. 몇몇은 딴 짓을 하고, 몇몇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몇몇은
뭔가 또 다른 속셈을 꾸미는 듯 하기도 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모범적이고, 평범하고,
그러면서도 다들 괜찮은 아이들로 이루어진 것이 우리반 아이들이다.
내가 그 반에 처음 배정을 받았을 때, 다른 반의 내 친구 하나는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건 약간의 처량하다는듯한 눈빛이기도, 혹은 무척이나 부럽기도 하다는 식의
눈빛이었다. 아마도 그때
‘어쩌면 너도 그 페로몬 분비를 전염...’
이라는 식으로 중얼거렸던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좋다.
난 그래도 이 반이 좋다. 남자들의 우정이랄까. 뭐, 친구니까 말이다. 나는 지극히 정상적이
고도, 평범하며, 그리고 괜찮은 아이들로 이루어진 우리 반이 참에 맘에 드는 것이다. 뭐 예
외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깐만,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이는 어쩐지 아까 호시노가
달려오던 것과 같이 무지막지한 달리기를 연상시키는 소리.....
쿠쾅!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것은 우리반의 만년 지각생, 언제나 주위 사람들의 안구에 습기가 끼
게하는 불행한 남자, 카미조 토우마였다.
“에에이, 제기랄, 제기랄, 정말로 불행합니다!!! 어째서 오늘 아침도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했는데, 정말 열심히 옷도 잘 입고 준비를 했는데! 분명 오늘의 불행은 아침에 다리
미에 지져져서 셔츠가 눌어버리고 오다가 편의점 도시락이 상한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난
줄로 알았는데! 어째서 갑자기 찌릿찌릿을 만나서 대판 싸우고 또 인덱스한테는 텔레비전이
폭파했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기껏 학교에 도착했더니 어째선가 트랩이 가득 깔려있고...
빌어먹을, 도대체 이 불행은 뭡니까??!!”
이렇게 지구로 돌아온 첫째 날의 수업은 시작되었다.
終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 제로의 사역마 2회차(팬픽) 읽기 완료 by 月の少女
- 제로의 사역마 11권 제1장 '폰·체르프스트' by 코토네
- 제로의 사역마 3기 스캔샷. by Cruel
- 제로의 사역마 1권 by 셜록홍군
- J-novel판 '타바사의 모험' 구매. 그리고 구매 기념 짤방. by 코토네
# by | 2008/01/05 00:29 | SS | 트랙백 | 덧글(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에미야 시로(Fate)
쿈(스즈미야 하루히)
타카마치 쿄우야(트라하)
이토 마코토(스쿨 데이즈)
츠치미 린(셔플)
유가인(오라전대)
호시노 와타루(?)
마에바라 케이이치(쓰르라미)
토노 시키(월희)
하리마 켄지(스쿨럼블)
아이자와 유이치(카논)
코우노(?)
아야사키 하야테(하야테처럼)
카부라기 미즈호(오토보쿠)
네기 스프링필드(네기마)
양소유(구운몽?)
카미조 토우마(금서목록)
......하렘 마스터 집결소?
코우노 타카아키(투하트2)려나..
저중 반이상 알고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