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03일
두서없는 댓글.
기본적으로 휘긴경께서 취하시고 있는 입장은 윤리학적 이기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기(利己)주의'라는 용어 때문에 제가 휘긴경을 비방하고 있다는 식의 오해는 하지 않으실줄 믿습니다.
휘긴경께서 말씀하시는 대표적인 유물론자인 홉스 역시 마찬가지로 '윤리학적 이기주의자'로 평가됨에서 볼 수 있듯이, 유물론적인 논증을 따라 윤리학적 이기주의에 도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이론에 따라 형성된 것이 초기 사회계약론이고 고전경제학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윤리학적 이기주의의 맹점은 결정적으로 자신의 이익, 즉 자신의 가치관과 보편적 가치가 충돌할때 드러납니다. 윤리학적 이기주의에 따르자면 '보편적인, 합의된 도덕'이 유지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궁극적인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이는 즉 개인이 경제적인 판단 절차를 거쳐서 '도덕률을 어기는 편이 궁극적으로 내게 더 도움이/ 나의 가치관에 더 부합이 된다'라고 될 때에는 도덕, 법을 어기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의 예시로서는 아마도 불법 자금 횡령등을 들 수 있겠지요. 멀쩡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도덕을 지키는 것으로 인해 돌아올 이익'과 '불법을 저질러서 돌아올 이익'을 비교해서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특수성’의 준동은 언제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엄청난 것으로 일어나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사소한 ‘나쁜 짓’ 역시 사실은 ‘작은 규모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니까 말입니다.
또한 휘긴경께서는 보편적인 가치 역시 특수적인 가치들에 바탕하였기에 보편적인 가치가 특수적인 가치를 강제하는 것은 주객전도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합의를 통해 ‘보편적 수용 가능성’을 지니게 된 보편적인 가치는 수많은 특수적 가치들의 ‘최소공통점’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최소공통점’의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윤리의 황금률, 즉 ‘역지사지’라고 생각합니다. 합의를 통해 ‘보편적 수용가능성’을 지니게 된 ‘생명의 중요성’은 나 역시도 생명을 위협당하고 싶지 않다는 황금률에 바탕합니다. 이는 곧 보편적 가치가 비록 ‘선험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 특수적 가치를 규약할 수 있는 위치에 서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물론, 이러한 논리는 “그래도 뭐 상관있어? 남을 등쳐먹더라도 내가 잘살면 되지.”라는 전제가 깔린다면 와글와글 무너져버립니다. 사실 제가 이 댓글을 쓰는데 전폭적으로 차용한 칸트의 윤리학 역시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는 힘들구요. 물론 제 지식이 아직 턱없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윤리적 이기주의는 이제 그 맞고 틀린 것을 떠나 사회의 근본적인 진리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자유시장체제가 명백한 사회원리가 되었고 말입니다. . 어쩌면 그냥 평소 휘긴경의 팬이자 부족한 학생인 제 푸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두서없는 댓글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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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벼운 마음에서 쓴 글... 휴. 어쩐지 그냥 글을 읽으니까 마음이 답답해서 주저리주저리 해보았습니다.
지식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대학에 가선 꼭 윤리학을 공부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by | 2007/09/03 19:59 | 망상 | 트랙백(3)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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